‘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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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작성일26-05-14 22:30
제 목‘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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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 출간‘인동초’ 김대중·‘동지’ 이희호의 투쟁이희호 메모·편지 등 20편 최초 공개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가족과 면회하는 모습. [한길사][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저의 남편은 정치인으로 정당한 정치활동을 했으며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실현시키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나날이 말살되어 가는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고자 투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회복과 인권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1981년 이희호 여사가 국제사회에 김대중의 인권회복을 요청하기 위해 쓴 편지)5·18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을 맞아 한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감옥 안팎에서 남긴 기록을 담은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이 출간됐다. 김 전 대통령이 ‘3·1 민주구국선언’과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수감됐던 1976~1982년의 옥중 기록과 이 여사의 메모, 편지, 국제 구명 활동 자료, 재판 기록 등을 담았다.특히 김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와 함께 이 여사가 작성한 옥중 면회 메모 9건, 국내외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 7건, 기타 기록 4건 등 친필 기록 20건이 최초로 공개돼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민주화운동의 국제 연대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반려자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함께 투쟁했다. 책의 제목이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장은 14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수감 기간 이희호 여사의 이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감자는 김대중이었지만 모든 대외 활동과 연락, 구명 운동 창구는 이희호였다”며 “이 여사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반자 역할을 했다. 본인 또한 중요한 한국의 인권운동가였다”고 밝혔다.이희호 여사의 면회 준비 메모. [한길사]김 전 대통령의 기록에는 장기간 투옥으로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발생한 의문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심각한 고관절 신경통에 시달렸지만, 수감 중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 또한 박정희 정부에서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겪었기 때문에 암살 가능성을 우려했다.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병실은 감옥보다도 나쁜 지옥이었다. 그가 “제발 교도소로 보내달라”며 단식까지 할 정도였다. 감옥병실에 수용된 채 정보사 요원과 군인을 포함한 수십 명의 감시 속에서 생활해야 했고, 창문이 가려진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 출간‘인동초’ 김대중·‘동지’ 이희호의 투쟁이희호 메모·편지 등 20편 최초 공개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가족과 면회하는 모습. [한길사][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저의 남편은 정치인으로 정당한 정치활동을 했으며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실현시키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나날이 말살되어 가는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고자 투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회복과 인권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1981년 이희호 여사가 국제사회에 김대중의 인권회복을 요청하기 위해 쓴 편지)5·18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을 맞아 한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감옥 안팎에서 남긴 기록을 담은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이 출간됐다. 김 전 대통령이 ‘3·1 민주구국선언’과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수감됐던 1976~1982년의 옥중 기록과 이 여사의 메모, 편지, 국제 구명 활동 자료, 재판 기록 등을 담았다.특히 김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와 함께 이 여사가 작성한 옥중 면회 메모 9건, 국내외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 7건, 기타 기록 4건 등 친필 기록 20건이 최초로 공개돼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민주화운동의 국제 연대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반려자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함께 투쟁했다. 책의 제목이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장은 14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수감 기간 이희호 여사의 이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감자는 김대중이었지만 모든 대외 활동과 연락, 구명 운동 창구는 이희호였다”며 “이 여사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반자 역할을 했다. 본인 또한 중요한 한국의 인권운동가였다”고 밝혔다.이희호 여사의 면회 준비 메모. [한길사]김 전 대통령의 기록에는 장기간 투옥으로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발생한 의문의 교통사고 후유<div class="sound_only display-none wfsr ui-helper-hidden"><p><span><a href="https://neoticket.co.kr/" rel="nofollow" target="_blank" title="네오티켓">네오티켓</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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